불판 20%만 산정돼도
조 단위 과징금 철퇴
“소송 아닌 감경 최선”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한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이하 홍콩ELS)을 판매한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추진하며 사태수습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자율배상 지침을 최대한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과징금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볼 요량이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하나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이 줄줄이 이사회 소집 및 위원회·지원팀을 신설하고 홍콩 ELS 자율배상 논의를 시작했다.

일단 금감원의 분쟁 조정 기준안을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지난 1월부터 약 두 달간 홍콩ELS 판매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 검사를 진행, 금융사의 조직적 불완전판매 정황을 인지하고 금융사에 투자자 손실액의 20~60%를 차등 배상하라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업계에선 금감원 기준안을 반영한 은행권 전체 배상액이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생금융지원과 고금리 여파로 리스크 비용이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뼈아픈 실책이다.

그런데도 은행이 개별 분쟁 조정 및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자율배상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건 과징금 부담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에 따라 금감원은 불완전판매를 한 금융사에 전체 상품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한 홍콩ELS는 8조원대에 이른다. 이중 구체적인 불완전판매 규모가 산정되진 않았으나, 20%로만 가정해도 조 단위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다만 금소법 시행령에는 감경 기준도 있다. 불완전판매 예방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내부통제기준·금융소비자보호 기준 운영상황 등을 고려했는지에 따라 과징금 액수 조절이 가능하다.

금감원 처분에 불복해 소송하게 되면 부담해야하는 법률비용도 만만찮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 2020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업무 일부 정지와 과징금에 이의제기 소송을 진행했는데, 한 해 동안 지출한 법률비용이 각각 388억원, 236억원이다.

반면 과징금 처분을 받은 지 14일 이내 납부할 시 20%가량을 추가로 감량 받을 수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의 자율배상과 동시에 금감원의 제재가 시작된다. 은행은 자율배상 내용 등을 포함한 소명 의견서를 보내고, 금감원은 이를 토대로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제재를 확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복현 금감원장이 ‘자율배상을 하면 과징금 등 제재 감경 사유로 고려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해온 만큼, 리스크 비용 부담이 큰 은행들은 당국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따르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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