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범주 넓히며, 21세기 새로운 장르 형성 중
‘위스키 붐’타고 중소양조장 적극적으로 제품 출시

최근 오크통에 숙성된 소주가 시장에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사진은 ‘다농바이오’의 포트 캐스크 숙성 버전인 ‘낫포세일’과 ‘토끼소주’의 ‘골드’와 ‘가넷’, 그리고 ‘한산소곡주 오크블루’이다.
최근 오크통에 숙성된 소주가 시장에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사진은 ‘다농바이오’의 포트 캐스크 숙성 버전인 ‘낫포세일’과 ‘토끼소주’의 ‘골드’와 ‘가넷’, 그리고 ‘한산소곡주 오크블루’이다.

술은 숙성기간이 길어질수록 술맛이 더 좋아진다고 흔히 말한다.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알코올 분자를 포함한 다양한 성분들이 안정화되고 분자 수준에서 잘 섞이기 때문이다. 특히 숙성과정에서 알코올 분자들이 휘발성 분자를 잡고 있어, 안 좋은 향을 덜 느끼게 해준다. 숙성주를 마신 뒤 ‘목 넘김이 편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이유다. 

최근 등장하는 증류식 소주는 대체로 숙성을 거친다. 감압식 증류를 한 경우에도 숙성을 거친 제품이 늘고 있다. 감압식은 증류기 안의 기압을 평상기압 보다 낮춰 증류하는 것으로 평상 기압의 조건에서 증류한 상압식 보다 술맛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의 끓는 점은 일반적으로 78.3℃지만 기압을 낮추면 60℃ 이하에서 증류가 이뤄져 열에 의한 반응물을 적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향기 일부를 잃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제품들은 증류 방식과 무관하게 숙성을 거친다. 좀 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아예 숙성 방식을 달리한 술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항아리나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가 아니라 위스키와 브랜디 숙성용으로 사용되는 오크통을 쓴 제품들이다. 

오크통. 참나무통은 서양의 경우 일반적이며 전통적인 숙성도구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선 낯선 도구다. 특히 술을 숙성시키는 문화가 없었던 우리는 오크통이 우리 술의 정체성을 해친다는 여론 때문에 수용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위스키 소비가 늘면서, 증류주를 생산하는 국내 양조장들도 적극적으로 오크통을 숙성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크통 숙성 소주를 처음 시장에 낸 곳은 증류식 소주 시장을 열었던 ‘화요’다. 지난 2011년 처음 5년 숙성시킨 소주(화요 X.P)를 시장에 냈고, 뒤를 이어 진로(일품진로)와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주류기업들도 오크통 숙성 소주를 내놨다.

처음 출시했을 때는 구색 갖추기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시장 반응이 좋아져서 제품 라인업에서의 포지션이 달라지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증류식 소주 생산업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오크통 숙성 소주를 하나의 아이템으로 정하고 제품을 기획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스마트브루어리와 토끼소주, 그리고 다농바이오와 한산소곡주, 브리즈앤스트림 등이다. 이 밖에도 여러 양조장과 증류소에서 오크통 숙성 소주를 준비하고 있다. 

오크통 숙성 소주 생산 양조장

5년차 양조장인 스마트브루어리는 알코올 도수 40%의 오크통 숙성 소주를 만들어오다 최근 46%와 52%까지 라인업을 늘렸다. 증류식 소주인 ‘마한’을 오크에서 최소 2년간 숙성시킨 제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외국산 대신 충북 영동에서 만들고 있는 오크통을 사용해 제품의 국산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토끼소주의 경우는 생산시설을 충주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기고 3년 전부터 숙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현재 판매 중인 오크통 숙성 소주는 ‘골드’와 ‘가넷’이다. 둘 다 알코올 도수 46%이며 골드는 아메리칸 오크, 가넷은 아메리칸 오크와 셰리 캐스크에 숙성시킨 제품이다.
 
다농바이오는 6종류의 오크통 400개에서 다양한 숙성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출시한 오크통 숙성 소주 ‘낫포세일’은 포트와 셰리 캐스크에서 2년6개월 숙성한 제품을 세트로 구성한 상품이다. 500세트 한정 판매라 오픈런을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를 끈 바 있고, 올 상반기 중에 상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한산소곡주 ‘오크블루’는 9년 전부터 준비한 제품이다. 8년 정도 오크에서 숙성된 제품이며 모두 프렌치 오크통이다. 수요가 늘고 있어, 올해 100개의 오크통을 추가로 도입해 숙성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밖에도 경남 창원의 ‘맑은내일’과 강원도 인제의 ‘브리드앤스트림’에선 오크칩을 넣어 숙성한 ‘운암’과 ‘쇼어골드’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좀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상압식 증류소주의 명가인 ‘담을술공방’에서는 포트 캐스크와 항아리 숙성한 술을 블렌딩한 제품을 한정판으로 판매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 

전통주 전문 보틀숍에서도 오크통 숙성 소주를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술술상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오크숙성 소주와 브랜디다. 사진 우측의 ‘마한오크’와 ‘운암’은 오크 숙성 소주다.
전통주 전문 보틀숍에서도 오크통 숙성 소주를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술술상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오크숙성 소주와 브랜디다. 사진 우측의 ‘마한오크’와 ‘운암’은 오크 숙성 소주다.

오크통 숙성 소주를 바라보는 시각

앞서 설명했듯 오크통은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낯선 소재다. 전해져 오는 고조리서의 주방문에는 소주의 숙성 기록이 없다. 즉 전통 증류식 소주는 ‘숙성’을 하지 않고 소비된 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의 모든 술을 수입해 소비하고 있다. 양조주는 물론 증류주까지 맛있다고 하는 술은 다 수입돼 마트의 주류코너에 채워져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통, 즉 ‘비숙성’을 굳이 따지는 것이 맞는 일일까. 

백보 양보해서, 항아리 숙성을 전통의 범위에 포함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입맛은 보수적이어서 경험한 맛을 다시 찾게 돼 있다. 오크통 숙성 주류를 경험한 소비자는 우리 술에서도 같은 맛을 찾는다. 바로 이 지점이 오크통 숙성 소주의 수요가 늘고 있는 이유이다.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전통주에서 출발한 양조장과 전통주의 범주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양조자들은 오크통 숙성 소주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자본의 입장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오크통을 수입해 숙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불편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민한 일본의 양조장

우리보다 먼저 오크통 숙성 소주를 내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주일 미군을 대상으로 오크통 숙성 소주를 만들었으나 규슈의 많은 소주 양조장들은 오랜 기간 자신들의 전통을 고수해왔다. 1950년대 일부 양조장들이 위스키 및 오크통 숙성 소주를 생산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소비자들의 기호도 바뀌고 있으니, 결국 오크통이라는 소재를 조금씩 수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소주의 2차 붐이 일던 1980년대 일본은 오크통에 관한 집중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일본 국세청의 고위공무원을 역임한 바 있는 《소주이야기》의 저자 스가마 세이노스케 교수는 “오크통에 고구마 소주를 6개월쯤 저장하면 고구마 소주인지 쌀 소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원료에 의한 본래의 향이 타르 성분의 향기에 숨겨져 위스키와 브랜디에서 공통되는 향기를 띠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향기가 강한 고구마 소주가 이 정도였으니 쌀 소주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일본의 양조장들은 10여 년 전까지 오크통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소비자의 입맛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일본 양조장들이 오크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다. 2019년(실제는 2020년)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에 초점을 맞추고 위스키 내지 오크통 숙성 소주를 출시키로 한다. 이 트렌드가 지금의 일본 위스키 붐 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통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할 때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불편함’ 이전에 전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장르’로 오크통 숙성 소주를 바라보길 제안한다. 다만 오크통의 장점과 소주의 장점을 살릴 방법이 무엇인지는 생산자의 몫이다. 이도 저도 아닌 술이라면, 오크통에 관한 기술이 발전한 외국 주류회사에 시장을 내주고 말 것이다. 그 절묘한 균형점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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